노라와 모라|김선재 지음|다산책방|208쪽|1만3500원
노라와 모라는 어린 시절 7년만 함께 산 의붓자매다. 노라의 친엄마가 재혼하며 계부의 딸인 ‘모라’와 자매가 됐다가, 7년 만에 이혼하며 남남이 됐다. 20년이 흐르고 모라가 노라에게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걸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런 식으로 모라를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죽음이 우리를 만나게 하다니.”
시인이기도 한 소설가 김선재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20년 세월을 뛰어넘어 재회한 노라와 모라가 함께였던 시절을 되짚어가는 이야기를 섬세한 문체로 그렸다.
노라는 채소의 종자를 구별해 파는 가게 ‘명농사’에서 일한다. 그는 해방 전부터 자리를 지켜온 작고 오래된 가게 ‘명농사’에서 비슷해 보여도 서로 다르게 자라는 씨앗들을 만지며 위로를 얻는다.
노라와 모라도 한때 하나였으나 지금은 “고추와 가지처럼 딴판인 얼굴들”이 되었다. 소설 중반쯤부터는 모라의 시선으로 바뀌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노라에겐 없었지만 모라에겐 있었던 기억, 노라에겐 있지만 모라에겐 없는 세계가 교차한다.
두 사람은 가난에 치이고 부모에 의해 방치됐던 아픔을 공유한다. 갑작스러운 친아버지의 죽음 후 엄마는 노라에게 “너만 아니었으면”이란 말을 달고 살았다. 모라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 후 연을 끊고 살다 시신 수습을 위해 장례식장에 가게 된다. 둘의 마음속 한구석엔 잠시나마 함께였던 기억 한 조각이 자리 잡고 있다. 노라와 모라는 잊고 있었던 그 시간을 되풀이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